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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즈비언의 시각에서 본 페미니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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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김지나 작성일18-11-04 02:06 조회161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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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30대와 40대 게이들은, 그들이 선호하는 업소를 망하지 않게 하고 꾸준히 새로운 가게가 더 생길 수 있도록 소비를 할 만큼 돈을 번다. 그러나 레즈비언들은 40대, 적어도 30대 레즈비언을 만날 장소조차 없다. 이것은 레즈비언들에게 ‘종로’가 없어서가 아니다. 갑자기 100개의 업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 해도, 다음 달이면 다 망해 있을 것이다. 왜냐하면 레즈비언은 그 업소들을 먹여 살릴 돈이 없기 때문이고,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. 쉽게 말해 ‘레즈비언으로서’ 소비할 준비가 된 30대부터 40대의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없다는 이야기다. 이것은 레즈비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, 무엇보다도 여성의 문제다.” -인터넷에 떠도는, 앞으로도 영원히 떠돌 글 ‘레즈비언 클럽이 구린 이유’ 중 

(팩폭은 언제나 아프다) 



혹시 90년대 중후반 신촌 놀이터 기억하는 사람? 산타페 아는 사람? 

그 시절 칼머리하고 워커 신고. 담배피우던 무리 중에 하나였다 나는. 

부치행세 하다 남자한테 폭행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, 

삐끼 텃세에 이태원 대로변도 무서워서 못 걸어다니던 시절이었다. 

이민와서 결혼까지 한 지금 이게 왜 갑자기 생각나냐면.. 

20년 세월이 넘어도 여전한. 그 시절 아련한 사람들 때문이다. 



난 당시에, ‘여성’의 역할에 갇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어서 화가 난 상태였다. 

뒤돌아보면 그건 사회적 억압과 내 성정체성, 썩 불행했던 가정사 등등이 섞인 결과였다. 

어렸을 때야 우리편 vs. 니네편으로 모든게 단순했지만. 돌아보면 그건 결코 단순치 않았다. 

사람 일이 얼마나 복잡한 건데. 하지만 그 때는 상관없었다. 

내 정신적 불행을 잠시나마 외면하는 데 ‘사상’만한 게 없었으니까. 

일단 겁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, 오빠와 차별대우하는 부모가 싫었고, 너무 일찍 자각한 내 정체성이 싫었고, 

내가 짊어진 짐을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세상이 싫었고. 기타 등등. 모든게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면 간단했다. 

근데 돌아보면 그냥 이런 생각이 드는거. 그게 뭐? 내가 불행한게 내 주변 개인들 탓인가? 

IMF때 폭삭 망한 부모가 나 미워서 날 내보냈을까? 오빠는 잘 되고 나 망하라고 등록금 안보태줬을까? 

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굳이 호모포비아라서 날 외면했을까? 

나에게 겹쳐진 불행들이 어떤 한 사람, 한 집단의 탓인가? 울분을 토하면 그게 사회운동인가? 

하지만 그 때, 그쪽 집단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. 

거의 절대 다수의 내 문제들은 사실 ‘우리편 vs. 니네편’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걸. 

나를 둘러싼 상황은 더럽게 복잡한데, 이게 단순히 ‘여성의 억압’이라는 필터로 단순화되었을 뿐이라는걸. 

난 내가 20년쯤 젊었더라면 요즘 흔한 애들처럼, 깨어있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을 것이라 확신한다. 



느닷없이 이 자아성찰을 하게 된 이유는, 

‘한국남자’에 대한 어떤 공포심, 열등감, 약오름, 혐오를 빙자한 질투 내지는 부러움, 이런 감성들이 지배적이었던 그 때 그 사람들이 촤라락 생각났기 때문이다. 

페미니즘이 지난 2-3년 폭발했다고들 생각하지만, 나에게는 오래된 추억의 한 페이지다. 

단언컨대, 지금 유행하는 모든 신조어, 구호, 공적 활동, 정서, 분노를 표출하는 방향 등은 최소한 30년은 묵은 것들이다. 

그리고 골때리게도. 그 때 우리편 vs. 니네편으로 갈라 놀던 그 궁상맞던 레즈비언 소굴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. 

그들은 여전히 본인들의 분노와 뒤섞인 감정을 서로서로 돌려보며 안심하고, 다른 집단으로 가 분탕질을 하고, 

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사회 부조리의 책임을 떠넘긴다. 

그리고, 집단 내의 그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. 명실공히 레즈 전문분야인 그 끔찍한 조리돌림을 당하기 싫다면. 

다시 반복하자면, “이것은 레즈비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, 무엇보다도 여성의 문제다.” 



게이들은 지들끼리 잘 논다. 난 이게 너무 부럽다. 

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Pride parade를 할 때면 어딘가 울컥한다. 게이들 돈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다. 

어딜가나 게이들은 자기들끼리 사귀고, 사업을 차리고, 구역을 만들고, 서로 모이고, 사회적 억압에 툭툭 털고 일어나 서로서로들 위로하면서 잘 산다.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. 

‘한국남자’가 무슨 엄청난 사회적 이득이라도 누릴거라 생각할 만큼 어리다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, ‘남자’는 그냥 원래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걍 산다. 

게이들이 일반남을 ‘전향’시키려고 하던가? 일반 커뮤니티에 잠입해서 여성혐오를 꼬득이던가, 아니면 여론 조작을 하던가? 일반들 ‘미러링’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던가? 아니다. 그저 자기들이 처한 환경 안에서 재미있게 잘 산다. 그런데. 



레즈는 이게 안된다. 성격 뒤틀린 이 불행한 여자들 절대다수는 서로의 감정을 매만질 수 없다. 본인의 불행을 갑옷삼아 구호를 외쳐대는 ‘우리편 니네편’ 컨텐츠를 소비하며 잠시 즐거울 수는 있겠으나, 90년대 그랬듯이, 금방 밑바닥이 드러난다. 

사이비 종교가 딱 이 테크를 타며 망하던가? 

그래서인지, 내가 평생 보아온 레즈들 대부분은 겁나 불행했다. 본인의 불행을 ‘해결’하려는 내부의 의지 대신에, 잠깐 ‘외면’하려는 외부의 자극을 선택하기 때문이다. 

나는 그 때 그 사람들 모습을 여초 커뮤니티 글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목격하고는 한다. 

세상이 우리편 vs. 니네편으로 칼같이 나뉜다면 세상 얼마나 속편할까. 

한 집단이 진짜로 모두 똑같은 믿음/사상/지위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알기 편할까. 



세상사람들 모두가 각각의 맥락을 갖고 있는, 애새끼들이 이해하기에는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들에 

이 늙은 레즈 집단들이 뛰어들어 온갖 노하우가 쌓인 분탕질을 시연해 내었다. 

실력을 그간 어찌나 갈고 닦았는지 기가 막힌다. 

하지만 그 단순무식한 본질에는 항상 ‘우리편 vs. 니네편’이 있다. 



24시간 내내 끊임없이 남자에 대한 열등감으로 바글바글 끓어오르지 않았다면 

결코 생각해 낼 수 없었을 발상을 동원하여, 

탈코르셋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널린 외모에 병적으로 의존하는 풍조를, 

여자가 기분나빠할 만한 사건 하나(anecdote)을 넘어 미디어에 노출되는 폭력(context)을, 

여자가 피해자로 알려진 한 범죄(anecdote)를 넘어 시민들 모두의 안전과 인권(context)을 슬쩍 외면하고는, 

이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언제나 본인들의 일차원적 놀이에 부합하도록 바꾸어버린다. 

이 단순화가, 스스로 엄청난 불행을 이겨내고 있다고 믿는 어린 세대들에게 어찌나 효과적인지, 

어린 친구들이 이 안타까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재생산하기 시작하였다. 

개인의 의견을 교환하는 건 당연히 금기에 가깝다. 카리스마 쩔던 90년대 신촌 레즈 담배쟁이들이 놀던 그대로. 



난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, 남 탓 안하고 열심히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. 

자기 집단에 뭔가가 구리다면 투자하고, 고쳐내고, 의견을 모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. 

레즈비언 바는 2018년 오늘도 여전히 구릴 것이다.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‘여자’ 탓을 한다. 

정말? ‘경제활동을 하는 레즈비언이 없다’고? 그 모든게 다 본인들이 ‘여성인 탓’이라고? 

마음 한구석 어딘가 본인들도 알고는 있겠으나, 그건 본인들이 미친여자 이기 때문이다. 

그리고 이 분탕질의 성공으로, 이제 한국 여성들은 원래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편견에 더하여, 

본인들이 미친여자가 아니라는 증명 까지 따로 해야만 한다. 

한때 동지로서, 여전히 레즈지만 더 이상 동지는 아닌 사회인으로서, 축하하고 싶다. 

30여년간을 구리게 버틴 당신들 기획의 대 성공에 대해서. 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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